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남들이 무시하는 용접 일 뛰어든 소년, 40년 뒤 ‘대한민국 명장’ 됐다

By 안 인규

안녕하세요, 저는 김일록이라고 합니다.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자라났습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꿈도 꿀 수 없었어요. 졸업하고 바로 취업할 수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공고에 가서 용접을 배웠습니다. 3D업종이라며 모두가 기피했는데 저는 그래서 용접을 선택했어요.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면 취업을 빨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있었지요. 또 용접할 때 생기는 불꽃이 제 눈에는 예뻐 보이기도 했습니다.

연합뉴스

용접 일은 제게는 괜스레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용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양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작업들은 바로 측정을 해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용접은 아닙니다. 엑스레이나 초음파 검사를 하지 않고서는 당장 내부 결함을 확인할 수 없지요.

다시 말해 작업한 본인만 안다는 겁니다. 그런 용접이 잘못되면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저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는 지금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진짜 제대로 한번 해봐야겠다’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저를 한심하고 답답한 사람 취급을 했지요. 사람들은 “언제까지 고작 그런 일만 할 거냐”, “땜질만 해선 못 쓴다. 더 큰 일을 해야지”라며 훈수를 뒀어요.

한국산업인력공단

현장 작업 일을 하는 저를 향한 무시는 일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묵묵히 용접 일을 계속해나갔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저를 이렇게 불러줍니다.

‘대한민국 명장

‘대한민국 항공 엔진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두주자’

한화 공식 블로그 캡처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항공 엔진의 거의 모든 부품을 수입했습니다. 현재는 상당 부분 자체 개발 수준에 이르렀어요.

저는 국내 유일의 항공 엔진을 만드는 기업에서 초정밀 기술을 담당하는 엔지니어가 됐습니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정밀한 엔진 용접을 담당했지요.

제가 용접 작업한 제품들은 보잉 등 전 세계 항공기에, 우리나라 공군 전투기에, 나로호와 누리호 같은 우주 발사체에 쓰여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제 스스로도 ‘고작 그런 일’이라고만 생각했으면 결코 이뤄내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하는 일의 크고 작음은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닙니다.

연합뉴스

위 이야기는 동기부여 및 자기계발 콘텐츠 기업 ‘열정에 기름붓기’에서 소개된 김일록 대한민국명장(용접분야)의 사연을 재구성한 글이다.

우리나라 용접 분야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는 김일록 명장은 지난 1979년 용접을 시작한 이래 한 길만 걸어온 인물이다.

현재 김일록 명장은 국내 유일의 항공 엔진을 만드는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한편 대한민국 명장은 산업 현장에서 15년 이상 근속하고 해당 분야 최고 기능을 가진 숙련기술자에게 정부가 주는 호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