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가 ‘물통 폭탄’ 의거 직전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By 김연진

지난 1932년, 윤봉길 의사는 자신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사 직전이었다. 윤봉길 의사는 김구 선생과 최후의 만찬 자리를 가졌다.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조촐한 소고기 국밥이었다.

윤봉길 의사는 말했다.

“이 시계는 (김구) 선생님 말씀대로 6원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저와 바꿔 주십시오. 제 시계는 앞으로 쓸 일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김구 선생과 시계를 바꾼 윤봉길 의사는 담담하게 상하이 훙커우 공원으로 향했다.

1932년 4월 29일이었다. 당시 일본은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의 탄생 기념행사 및 전승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국가보훈처

행사장으로 몰래 침투한 윤봉길 의사는 기회를 노렸다.

그의 낡은 시계는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순간 윤봉길 의사는 단상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그러고는 조선의 독립을 울부짖으며 폭탄을 던졌다.

그의 의거로 일본의 주요 인사들이 죽거나 다치게 됐다.

사건 이후 일본 헌병에게 붙잡힌 윤봉길 의사는 본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구타를 당하며 끌려갔다.

1932년 5월 28일 윤봉길 의사는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12월 19일에는 사형이 집행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연합뉴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87년 전 그는 누구보다도 담대하고, 또 위대했다.

목숨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옳은 길을 걷기 위해 훙커우 공원으로 향한 그의 발걸음은 후대에게 큰 울림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는, 조선의 독립운동가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거사 직전 윤봉길 의사는 젖먹이였던 어린 두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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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에 깃발을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