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홍 고급흑’ 중국 공직사회에서 가장 핫한 두 단어..60년 ‘고인 물’의 폐해

By 남창희

최근 중국 공직사회에서 가장 핫한 단어는 ‘저급홍’과 ‘고급흑’이다.

두 단어는 지난 2월 중국공산당 핵심수뇌부에서 발표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당의 정치건설 강화를 위한 의견(中共中央关于加强党的政治建设的意见)’에서 언급됐다.

해당 문서에서는 “올바른 인식과 올바른 행동으로 두 가지를 지켜내야 한다(两个维护)”면서 저급홍이나 고급흑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두 가지란 시진핑 총서기가 공산당의 핵심이며 권위있는 당의 영도자라는 내용이다.

저급홍(紅)은 겉으로는 도와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역효과를 내는 수준 낮은 칭찬이나 충성행위를 가리킨다. 붉을 홍(紅)자는 아름답게 치장한다는 의미다.

쑤저우 마라톤 경기 중계방송 화면 /CCTV화면 캡처

대표 사례가 지난해 11월 중국 안팎을 떠들썩하게 했던 ‘쑤저우 마라톤 오성홍기’ 사건이다.

당시 한 자원봉사자가 한창 결승선을 앞둔 중국선수에게 오성홍기를 억지로 넘겨주려다가 해당 선수가 5초 차이로 우승을 놓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됐고, 중국 내부에서조차 “기본적인 질서와 규칙조차 무시한 행위는 애국이 아니라 나라 망신”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한편 고급흑은 칭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먹칠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한국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은어인 ‘고도의 돌려까기’에 해당한다. 우회적인 방식으로 깎아내리거나 비판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시진핑 서기의 은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習總書記的恩情永不忘)’ 관련 보도사진 /홍콩 언론 캡처

최근 중국 최대정치회사 ‘양회’를 앞두고 자취를 감춘 가곡 ‘시진핑 서기의 은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習總書記的恩情永不忘)’가 고급흑의 사례다.

이런 식의 과도한 찬양은 공감보다는 거부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같은 편이 아닌 반대세력 쪽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유포시키기도 한다.

중국의 방대한 관료사회와 당 조직만큼이나 저급홍과 고급흑은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중국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던 ‘모란언니(默然姐姐)’ 사건도 고급흑의 대표적 사례로 입에 오른다.

당시 헤이룽장성(흑룡강성) 한 법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한 여직원이 28일 연속 야근을 하며 옷도 갈아입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으며 열심히 일했다”고 호들갑스러운 게시물을 올렸다.

중국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억지스럽고 비상식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해당 법원 측은 ‘당에 대한 헌신, 인민을 위한 봉사’을 선전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역풍만 초래하는 결과를 얻었다.

중국 네티즌이 환경부 발표 내용을 캡처해 SNS에 올린 게시물 /보타왕 캡처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의 말장난에 가까운 논평도 저급홍 고급흑에 해당한다.

최근 북방의 시 정부에서는 ‘석탄의 천연가스 전환’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어 난방사용량이 급증하자 천연가스 공급대란이 일어났고, 결국 시 정부는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그러자 중국 환경부에는 “따뜻한 기운이 당장은 끊겼지만 국가의 정책은 따뜻하다”는 논평을 냈다.

정책의 실패마저 정치선전에 활용하는 뻔뻔한 발언에, 중국 네티즌은 “국가의 정책은 따뜻하겠지만 인민의 마음은 싸늘하다”며 꼬집었다.

중국공산당은 집권을 위해 중국인의 오랜 전통과 정신문화를 말살해왔다. 그리고는 무신론과 진화론을 이용해 “신 대신 공산당, 공산주의는 가장 진화한 이념”이라고 세뇌해왔다.

저급홍 고급흑은 그렇게 60여년이 흘러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이 된 중국 당 조직과 관료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