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 유족 동의 없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 명단 공개

By 연유선

한 인터넷 매체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중 155명의 명단을 전격 공개했다. 그러나 유가족 동의 없이 이름을 공개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진보 성향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태원 희생자, 당신들의 이름을 이제야 부른다”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155명을 공개했다.

MBN뉴스 보도 캡처

해당 매체는 “시민언론 더탐사와 협업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명단을 공개한다”며 “지난달 29일 참사가 발생한 지 16일 만이다. 14일 현재 집계된 사망자는 총 158명이지만 명단은 그 이전에 작성돼 155명이 기록됐다”고 밝혔다.

이어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면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데 호명할 이름조차 없이 단지 ‘158’이라는 숫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추모 대상이 완전히 추상화된다는 의미다. 이는 사실상 무명(無名)이고 실명(失名)”이라고 밝혔다.

MBN뉴스 보도 캡처

매체는 “얼굴 사진은 물론 나이를 비롯한 다른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 없이 이름만 기재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는 않는다”면서 “하지만 위패도, 영정도 없이 국화 다발만 들어선 기이한 합동분향소가 많은 시민들을 분노케 한 상황에서 희생자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한다”고 명단 공개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계기로 위령비 건립 등 각종 추모 사업을 위한 후속 조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한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에 출석해 “일방적인 명단 공개가 유가족에게 깊은 상처가 되지 않겠느냐”는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의 질의에 “유족과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무단공개는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실제로 인터넷 매체 ‘민들레’와 ‘더탐사’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것을 두고 일부 유가족 측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14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중 한명이 SBS와의 인터뷰에서  “유가족들만큼 이 사람들이 슬플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전 국민에게 애도를 갖다 강요를 한다는 거는 이거는 본인들 언론사의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일밖에 더 되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17세 희생자의 작은 할아버지 정모씨(62)도 14일 한겨례와의 인터뷰에서 당황스러움을 표한 바 있다. 정씨는 “유족들은 정부에 진정한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 시점에서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유족은추모하는 건 좋지만, 유가족의 동의 없이 이름이 바로 올라와서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한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에 대한 경찰 고발이 예고됐다.

이종배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은 “이태원 희생자 명단이 공개된 것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라며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